인간 로키x천둥의 신 토르

 

 

 

 

마주친 시선에서 일어나는 불같은 스파크

 

소설이나 노래 가사에 흔히 나오는 비유를 로키는 통감했다. 그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짜릿짜릿한 느낌. 맞은편의 푸른 눈동자가 동공에 담길 때마다 저릿저릿해지는 심장. 그도 그럴게 로키의 애인은 천둥의 신이었다.

 

첫인상의 끌림과 몇 번의 우연, 또는 운명을 통해 그들은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호감을 넘어서 성애로 이어진 뜨거운 감정. 토르가 저보다 큰 근육질의 남자라는 것도, 지구가 아닌 우주의 이방인이라는 사실도 그들 사이에 장벽이 될 순 없었다. 얼어붙은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을 녹이듯 로키는 토르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둘이서 찬란한 여름을 맞을 터였는데.

 

일주일 전, 밀린 업무를 해치우고 늦은 귀가를 했을 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토르를 보고 로키는 내심 감동했다. 그의 입술이 부르는 제 이름이 안겨주는 기쁨과 충만감. 오직 거리를 좁히기 위한 구실인 뿐인 사사로운 대화를 마치고 마침내, 마주친 시선 속에 서로가 오롯이 담겼을 때 초조함과 긴장에 살짝 말라있던 입술이 겹쳐졌다. 그리고 로키는 기절했다.

 

좀 과로였던 모양이야.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토르의 얼굴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키는 은근히 웨이트 트레이닝과 영양보급에 신경을 썼다. 슬림한 체형이지만 체력이나 지구력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로키는 토르와 스킨십을 나눌 때면 가슴께에 전류가 통하는 뻐근함을 느꼈고 몇 번 더 정신을 잃었다.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그런 모양이다.”

 

거기까지만 말하지 그랬어. [네가 이렇게 여린 줄도 모르고미안하구나.] 이어진 소리가 로키의 예민한 심기를 건드렸다. 여전히 그를 걱정하고 있지만 분위기가 농밀해질라치면 번번이 흐름이 끊기다보니 토르도 약간 짜증이 난 것일까. 온몸의 털을 바짝 서게 하는 스파크를 참고 견디기도 해봤지만 인간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저 건방진 천둥의 신은 제가 조절할 생각은 못하는 건가, 괘씸하게.

 

요는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리하여 결심을 마친 로키가 토르를 데리고 간 곳은 시내의 러브호텔이었다. 그는 경박함을 멸시했지만 역시 이만한 장소가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토르의 손을 붙잡고 비장하게 들어선 룸은 사방이 거울로 덮여있는 방이었다. 천장 역시 전면이 거울로 되어 있었다. 로키가 이끄는 대로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으니 그들로 꾸며진 만화경 속에 갇힌 기분이 되었다.

 

여기라면 직접 시선을 마주치지 않더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

 

어처구니없다는 듯 돌아보다 이내 털털한 웃음을 터트리는 토르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로키 네가 이렇게 많구나. 그래 오직 너와 나뿐이야. 그리고 이제 그들의 사랑으로 충만해질 공간이었다. 하던 도중에 시선이 마주치면 어떡하지? 감은 눈에 입을 맞추면서 로키가 속삭였다. 그럴 여유는 없이 울게 될 거야, 토르.

 

 

 

 

Posted by 모노님 :

[MCU/로켓토르] 룸메이트

2018. 8. 17. 02:56 from MCU

 

 

 

* 로켓X토르 대학생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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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태양'이라 할 수 있다. 저기 봐, 토르 오딘슨이야. 그 유명한?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좇듯 모든 고개가 그를 따라 움직인다. 그가 밝은색의 블론드여서만이 아니라 찡긋 날리는 윙크나 해사한 웃음을 지을 때 드러나는 새하얀 치열 등 모든 게 반짝거린다는 느낌이다. 그에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목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달'인가. 어느 정도 음습한 구석이 있음을 로켓은 인정했지만 그는 달이 뜨면 야수로 변하는 늑대인간은 아니었다. 비유는 집어치우고 아무튼 토르는 빛났다. 좀 지나친 게 문제지만. 

 

토르는 로켓의 대학교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공과대와 예대 건물이 서로 떨어져 있음에도 둘은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지난해 디자인과 놈팽이 새끼와 트러블이 있었기에ㅡ침대에서 싸구려 대마를 핀 흔적을 발견하고 룸메이트를 묵사발로 만들었다(로켓은 후각이 예민했다, 그의 침대에서 핀 것이 문제였다)ㅡ로켓은 살짝 언짢았다. 예술에는 딱히 조예가 없는 그였기에 어느 정도 편견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어떤 놈팽이 새끼가 기어들어 오나 싶어 팔짱을 끼고 입구를 노려보는데 북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토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 앞까지 따라와 짐 풀기를 도와주겠다, 우리 방에도 놀러와라 소란스럽던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야 토르는 뒤늦게 인사를 건넸다. 미안해, 시끄러웠지. 토르는 로켓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두어 번 부드럽게 주물렀다. 혹시 운동하나? 체육관에선 본 적 없는데. 첫 만남에 건네진 친밀감의 표현에 로켓은 내심 당황했다. 미식축구 관심 있어? 우리 팀에 들어와, 끝내줘. 그가 <리벤져스>라는 미식축구팀의 쿼터백이고 그의 신생팀이 리그 상위권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캠퍼스에 있는 학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십에 관심 없는 로켓 또한 토르에 대해선 어느 정도 주워들은 것이 있었다.

 

-<리벤져스>는 이번에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빌 워>대회에선 플레이 오프에도 없지 않았나.

-하하, 이번엔 기대해도 좋아.

 

한껏 비꼰 말에도 토르는 변죽 좋게 웃었다. 더 입부를 권하진 않았고 다만 아까운 어깨야, 아쉬운 척을 했다. 실은 지난 여름방학 가드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저절로 배겨진 근육이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래도 아예 눈치가 없어 뵈진 않아서 로켓은 어느 정도 그와 잘 지내볼 기분이 들었다. 운동하는 놈이 약을 빨진 않겠지...들고 온 박스를 풀고 짐을 꺼내 옷장부터 채워가던 중 토르가 문득 로켓을 돌아보았다.

 

-나도 너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데. 

-뭔데.

-별명이 <외로운 늑대>라며?

 

처음 들었을 때 로켓은 그것이 무슨 신종 악성 코드의 이름인 줄 알았다. 요즘엔 게임 아이디로도 안 쓸 유치한 별명. 공대에 괴팍한 천재가 있다고, 늘 혼자 다녀서 사랑을 모르는 외로운 늑대라던데. 그런데 작년에 룸메이트 코를 부러뜨렸다는 게 진짜야?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것이 더욱 가관이었다. 그의 새로운 룸메이트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보름달이 떴다 해서 로켓이 야수로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깊은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그에게도 은밀하다면 은밀한 비밀이 있었다. 그를 둘러싼 유치한 추측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일부 맞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최근에 그는 좀 외로운가 싶었고, 또 사랑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엄밀하게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늦은 밤, 그가 맥주를 마시며 낯선 남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장소가 번화가의 펍이 아니라 게이클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로켓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일 것이 뻔했다.

 

로켓은 게이였다. 그렇다고 아무 남자랑 자고 다니는 클럽 죽돌이나 마성의 게이까진 아니고. 그냥 이따금 클럽에 들러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 어쩌다 그럴 기분이 드는 남자와 하룻밤 욕구를 해소했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두뇌는 튈 때와 튀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했고 본의 아니게 금욕과 원나잇을 오가는 이중생활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작년 디자인과 룸메이트의 코를 부러뜨린 이유도 마약에 취한 새끼가 로켓의 침대 위에서 그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자위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클럽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헐떡였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룸메이트와 섹스라니 말도 안 되지.

 

클럽에선 되도록 술만 마시는 그였지만 오늘 밤에 만난 녀석은 꽤 적극적인 타입이었다. 허벅지에 올려진 손이 술기운을 핑계로 몇 번이나 다리 사이를 터치하며 노골적인 싸인을 보내왔다. 달래듯 키스를 해주어도 반쯤 맛 간 눈이 한 판 뜰 생각으로 형형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약에 취한 듯하다. 로켓은 쯧 혀를 찼다. 그는 마약에 절은 섹스를 혐오했다. 그래도 제법 취향인 녀석이었는데.

 

주위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이라도 바지 버클을 풀어내릴 기세인 녀석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일단 복도의 간이의자에 앉히고 관리인을 붙여준 후 돌아갈 생각이었다. 벗어날 핑곗거리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술과 약에 취한 녀석이 바로 의자 위에 쓰러졌다. 관리인과 함께 차가운 생수를 찾아 나선 그때였다. 

 

-취한 파트너를 버려두고 가는 건가?  

 

아니면 그쪽은 볼 일 다 봤다는 거? 그의 매너를 비난하는 신랄한 음성에 로켓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등을 돌리는 그의 인상이 어쩔 수 없이 짜증으로 가득했다. 신경 끄고 꺼지라 말할 셈이었다. 하지만 인사불성으로 너부러져 있는 녀석처럼, 아니 그보다 더 밝은색의 블론드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뒤늦게 낮은 목소리가 귀에 익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늘 자신만만하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지금쯤 그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인 치어리더와 드라이브를 하거나 밤새 불꽃놀이를 하는 수영장 파티에 가 있었어야 했다. 이런 늦은 시각, 어두운 뒷골목의 게이클럽이 아니라. 

 

-운동을 어디서 하나 했더니, 여기서 했나 보군.

 

고개를 돌아본 곳엔 인기스타 쿼터백, 빛나는 태양, 그의 룸메이트 토르 오딘슨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토록 어색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사건의 당일은 물론 이후로도 며칠 외박을 하거나 새벽녘이 돼서야 들어가는 등 마주치는 상황을 필사적으로 피해왔지만, 같은 기숙사의 룸메이트인 이상 언젠가는 마주칠 운명이었다. 각자의 침대에 걸터앉은 채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만난 장소나 뉘앙스를 보아 아웃팅의 위험은 없어 보이지만 그런데도 로켓은 뭔가 약점 잡힌 기분이었다. 그날만 해도 얼어붙은 로켓의 어깨를 처음 만난 그때처럼 주무르고 떠난 것은 토르였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입을 연 것은 토르이다.  

  

-금발이 취향이면 말하지 그랬나.

 

상황의 국면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로켓은 이때 느꼈다. 그들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어쩐지 묘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고개를 들어 흘겨본 토르는 태연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로켓은 문득 작년 자신의 침대에서 자위쇼를 펼쳤던 옛 룸메이트를 떠올렸다. 토르에게서 약 기운 같은 건 일절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그놈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걸까. 잠겨 드는 목을 한 번 가다듬은 로켓이 힘주어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난 룸메이트랑 섹스 안 해.

-왜지? 

-왜냐니...룸메이트잖아? 클럽에서 만난 파트너랑 다르다고.

-그러니까 그 룸메이트랑 자면 굳이 클럽에 가서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없잖아? 

 

고민할 가치가 없는 간단한 공식을 설명하듯 토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네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거기까지 듣고 나니 로켓도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각했던 저에 비해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이 장난처럼 대수롭지 않게 들려온다. 그만큼 분위기는 가벼워지고 로켓도 더이상 고민하는 자신이 점점 고집스럽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약간 될 대로 되라 싶은 자포자기의 심정도 든다. 금발만 아니었어도, 잘빠진 근육질만 아니었어도...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던 그의 이성이 마침내 푹하고 꺾이고 말았다.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올래? 마주친 얼굴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Posted by 모노님 :

[MCU/로켓토르] Sweet Rabbit

2018. 8. 10. 04:49 from MCU

 

 

* 인워 코멘터리에서 '쪼끄맣고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다는 로켓보고 쓰는 글

* '모든 것을 다 잃고 이기느냐 죽느냐 갈림길에 있는 남자와 극히 무감각한 캐릭터의 만남'

루소즈가 퍼주는 로켓토르 파세요...이건 대박이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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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주에서도 괴짜 행성이라 불리는 하프월드에서 태어났다. 아니 만들어졌다는 것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처음 그는 'SUBJECT: 89P13'이었다. 서브젝트 에잇 나인 블라블라는 아무래도 이름치곤 좀 길다 보니 스스로를 '로켓(Rocket)'이라 지칭하였고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차차 악명을 알려나갔다. 그러던 중 모종의 사건을 통해 피터 퀼이라는 얼간이 동료를 만나면서 그의 생물학적 종족이 '라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잡것이나 괴물, 설치류 따위로 불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의 크루가 되었고 무엇보다 특별한 그에겐 보다 다양한 대명사가 붙었다. 트래쉬 판다, 싸이코 무기광, 사람 열 받게 하는 녀석, 아니 빡치게 하는 놈...어느 것 하나 점잖은 것이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언젠가 꼭지가 돌아버려 술김에 울분을 토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선 자기혐오도 꽤 덤덤해졌다. 내심 인정하는 부분이 있었다. 세간의 기준에 따르면 로켓은 나쁜 놈이 맞았다.

 

한 번 폭발한 뒤로 크루들은 그의 과거에 대한 화제를 은연중에 피하는 것 같았지만 로켓은 몇 번인가 하프월드를 떠올렸다. 여생을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그에게도 차마 고향이라 칭할 수 없는 곳이지만 태초의 기억은 그곳에 있었다. 로켓이 떠올리는 것은 무법천지의 끔찍한 혼종의 별이 아니라 그를 분해하고 조립한 과학자들이었다. 아마도 병기를 만들기 위한 유전자 변형 실험 같은 것이었겠지만 어쩌면 심심풀이 땅콩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정신 나간 새끼들 꼭 죽여버려야지. 이제는 분노의 감정보단 <내일은 퀼이 아끼는 젤리를 훔쳐 먹어야지>와 같은, 잠들기 전 세우는 하루 계획처럼 로켓은 시니컬한 복수를 다짐한다. 아무튼 로켓의 본성은 그 태초에, 그 수술대 위에서 기인한 것이다. 고도로 지능을 향상시켰으나 정신 나간 과학자들은 그릇인 짐승의 야성 만큼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공격적이고 비이성적인 야성.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그는 3피트(90cm)짜리 야수였다.

 

먼 과거로부터 거슬러 온 자기성찰 끝에도 로켓은 시원스러운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뜻밖의 정체성 찾기가 그를 고뇌하게 만들었다. 로켓은 한 번도 자신의 본성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껏 저지른 수십 건 이상의 절도와 탈옥, 방화 등의 전과를 후회하거나 반성한 적도 드물었다. 그래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세상 모두가 로켓을 나쁜 놈이라 하는데 토르는 그더러 스윗 래빗(sweet rabbit)이라 부른다. 어째서? 의문은 로켓의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Sweet Rabbit

 

 

 

 

 

 

아스가르드 재건을 위한 원조를 요청하고자 니다벨리르로 향하던 도중 토르는 조난 신호를 포착했다. 신호는 오래전에 버려진 외딴 별에서 쏘아 올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양자 소행성 지대에 휩쓸려 불시착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상에 도착했을 때 추락한 것치곤 주변에 멀쩡하게 우거져 있는 수풀이나 흠집 하나 없는 우주선이 영 수상스러웠다. 어쩐지 낯익은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던 토르는 이내 그 우주선이 언젠가 신세 진 적 있었던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의 밀라노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켓이 우릴 배신했어."

"피터ㅡ"

 

이건 배신이나 마찬가지야. 망할 너구리, 내 우주선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부득 이를 가는 피터 퀼과 일행들은 밀라노의 조종석에 다친 구석일랑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우주선의 입구에 선 토르와 그들 사이를 레이저로 만들어진 촘촘한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여기서 며칠째 꼼짝도 못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화장실로 가는 통로는 안 막아놨더라고. 퀼이 하나도 다행스럽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최근 근방에선 우주 광견병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것이 로켓에게 전염됐다는 것이다. 광견병이라는 대목에서 토르는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납득했다. (로켓이 진짜 '래빗'이 아니란 것은 토르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단순한 열병인 줄 알았으나 실은 바이러스의 잠복기였던 지난 수일간 점차 이성을 잃어버리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막판에는 크루들의 얼굴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전 아침, 온몸에 끓어오르는 열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로켓에게 퀼이 다가가려던 때였다. 무언가의 스위치를 작동시킨 로켓이 그대로 우주선 밖으로 뛰쳐나갔고 뒤쫓을 새도 없이 견고한 레이저 벽이 올라와 밀라노의 입구를 틀어막은 것이다. 사전에 로켓이 남긴 메시지가 모니터 화면에 번쩍거리는 것을 크루들은 넋을 잃고 쳐다봤다고 한다. <통돼지 바비큐 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다행히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자연히 소멸하는 종류야. 하지만 병이 나을 때까지 로켓이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어."

"이 별에 외부인의 발길이 끊긴 지 족히 백 년은 되었어. 어떤 위험 요소가 있을지 나도 알 수 없네."

"지금 로켓이 제정신이 아니란 것도 걱정이야. 열 때문에 꽤 괴로워했어."

"그건 그 녀석 심보가 고약해서지."  

"로켓은 동료들한테 피해를 주는 것보다 혼자 감당하는 걸 택한 거야."  

"그래서 우릴 레이저 벽에 가둬? 지가 무슨 하드보일드 영화 주인공이야?"

 

펄쩍 뛰는 퀼에 벽에 기대서 상황을 설명하던 가모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르가 살짝 미소지었다. 래빗은 좋은 동료들을 두었군. 두고 봐 나중에 털을 박박 밀어버릴 테니까. 허공에 대고 분노를 터트리는 퀼을 뒤로 한 채 가모라가 레이저 벽 앞으로 다가와 토르와 시선을 맞추었다. 보다시피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그래서 당신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고개를 돌린 퀼이 토르에게 삿대질을 했다. 지난번에 우리가 구해준 거 기억하지, 그때 공짜 밥도 먹었잖아? 집 나간 너구리 좀 잡아주겠어. 아니면 우리가 밀라노를 부수고 나가야 하나 싶거든? 토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별인지라 밀림에는 길이랄 것도 없었다. 위를 향해 제멋대로 우거져 자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서 방향조차 분명치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인 오딘과 함께 사냥을 할 때면 이렇게 진흙 위에 남은 발자국을 좇곤 했는데...그리운 기억이 떠올라 잠시 감상에 빠지려던 것을 추슬러 토르는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이니 분명 무사할 것이라 믿으면서도 밤과 함께 어둠이 가까워져 올수록 토르도 로켓이 걱정되었다.

 

이렇게 로켓을 찾고 있자니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나라를 잃고, 친구를 잃고, 무기력한 상태로 동생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던 끔찍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부를 잃었던 순간을 어렴풋하게나마 되짚을 수 있는 것은 토르 역시 시간이 흘렀기에 가능한 것이다. 1500년 이상을 살아온 신에게도 그만큼 괴로운 시련이었다. 운이 따라 같은 목적지를 갖게 된 로켓과 포드에 올랐고 복수심에 눈이 멀었던 그는 작은 친구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토르에게 먼저 대화를 걸어온 것은 로켓이었다. 그는 말을 가리지 않았고 잔인한 토르의 현실을 그대로 읊어주었다. 할 수 있겠어? 대수롭지 않게 나열한 단어들은 반대로 그의 상처를 헤집어 보여주는 꼴이었으나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일은 없었다. 운명을 운운하는 자신에게 도리어 되물었다. 그 생각이 틀리면? 결국에는 말문이 막혀버린 순간이 찾아왔지만 이상하게 화가 나진 않았다. 로켓은 그를 비웃지도 현실을 직시하라 훈계하지도 않았으니까. 드러낼 만큼 드러냈다 생각하자 오히려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저만치 다가와 있을 죽음 또한 개의치 않아졌다. 그 날 토르의 운명을 빌어주며 로켓이 건네주었던 안구는 이제는 자신의 눈이 되어있다. 작고 상냥한 친구에게 신뢰를 갖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포드 안에서 자신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 그로선 막을 힘이 없던 눈물을 로켓은 그저 지켜봤을 뿐이다.

 

문득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친다. 수풀을 밟고 다가오는 소리였다. 숨을 죽인 토르는 주의를 집중해 그것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익숙해진 어둠의 건너편에서 두 개의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서슬 퍼런 시선에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았으나 토르는 머뭇거리는 일 없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몸을 날리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토르와 로켓이 서로를 주시하였다. 

 

발톱을 드러낸 네 발로 땅을 딛고 있는 모습은 완연한 짐승의 것이었다. 래빗? 동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더니 토르 역시 그런 모양이었다. 자네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말을 건네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성대를 긁는 거친 목소리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울음소리였다. 못 본 사이에 꽤 터프해졌지 않나. 너스레와 함께 그를 붙잡을 타이밍을 생각하던 찰나, 먼저 달려든 것은 로켓이었다. 덩치가 작은 만큼 동작은 눈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재빨랐다. 순식간에 타고 오른 로켓이 등 뒤에서 목덜미를 덥썩 물어오는 바람에 중심을 잃은 토르의 한쪽 무릎이 무너져 내렸다.

 

가장 연약한 목덜미를 공격해 단숨에 숨통을 끊는 것은 야생의 본능이다. 갑옷과 같은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는 몸이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이빨은 쉽게 살갗을 찢고 파고들었다. 로켓을 떼어내기 위해 어깨를 뒤척여 보았지만 악착같이 박힌 송곳니는 빠져나올 기세가 보이질 않는다. 통증과 함께 핏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토르가 외쳤다. 래빗! 정신 차리게! 

 

그제야 목덜미를 물어뜯는 턱에서 천천히 힘이 빠지는 것이 전해져온다. 숲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토르...? 들려오는 음성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게 떨리고 있어서 토르는 덩달아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제게서 벗어나려는 낌새에 토르의 손이 먼저 움직여 로켓의 머리를 눌렀다. 빠졌던 이빨이 다시 살을 파고들었지만 토르는 버둥거리는 로켓의 몸을 놓지 않았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뜨끈한 피가 더욱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침내 떨어져 나간 로켓이 바닥에 무릎 꿇은 토르에게 소리쳤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표정. 정신이 든 로켓이 토르를 처음 보았을 때 얼굴이 딱 그랬다. 아스가디언의 육체에 바이러스가 전염될 일은 없다고 재차 말했지만 불안에 흔들리는 시선은 계속 토르의 목덜미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빨이 난 자리를 따라 뚫린 구멍에 생긴 핏자국이 흉측했다. 로켓을 안심시키기 위해 커다란 손으로 목덜미를 감쌌지만 더욱 피칠갑을 한 꼴이 되었다. 괜찮네. 피도 다 멎었다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자네도 알잖나. 싱긋 웃는 얼굴을 하자 겨우 흔들리던 눈이 잠잠해졌다. 

 

겨우 의식이 돌아왔지만 등에 닿던 체온이 내내 불처럼 뜨거웠으니 그가 앓고 있는 고통은 그대로일 터였다. 병이 더 진전되지 않도록 로켓을 진정시키고 최대한 회복에 전념해야 했다. 그새 내뺄 궁리를 하고 있는 로켓에게 토르가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섰다.      

 

"그만 돌아가게. 동료들의 걱정이 커."

"됐으니까 내 일에 신경끄고 꺼져."

"여기까지 와서 내가 그냥 갈 것 같나? 어떻게든 자네를 데리고 돌아갈 거야."

"젠장! 망할 해적천사!"

 

욕설을 뱉는 로켓의 모습에도 토르는 어쩐지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알았으니 열이 더 오르기 전에 누워 있게. 다음엔 목덜미가 아니라 다른 데를 물어뜯는 수가 있어. 좋네, 대신 앞으로 예방주사는 꼭 맞도록 해. 결국 로켓이 진저리를 치며 등을 돌려 누웠다.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는지 거기서 다가오지 마, 지친 목소리가 경고한다. 해서 토르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앉았다. 밤새 그를 지켜보기엔 충분한 거리였다.

 

그의 휴식이 방해받지 않도록 주위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토르는 조용히 로켓의 상태를 살폈다. 진이 빠진 등가죽을 들썩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퍽 안타까웠다. 그저 선선한 밤기운에 어서 열이 떨어지길 마음속으로 바랬다. 솔직하지 못하고 애써 미움을 사려 하는 태도가 어쩐지 제 동생과도 닮아 있어서 토르는 그것이 밉지가 않았다. 지금도 제가 남긴 상처가 걱정 되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여기 남겠나] 

 

니다벨리르에서 마침내 스톰 브레이커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빛나는 바이프로스트 앞에서 토르는 로켓에게 물었다. 그는 타노스라는 절망을 상대하러 갈 참이었다.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길. 그에겐 돌아볼 한 점 후회나 미련도 없었으나 로켓은 아니었다. 잃을 것이 많다고 했잖아. 포드에 태워 니다벨리르까지 인도해준 것만으로 감사했다. 그에게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 자넨 폭풍에 휘말린 가엾은 친구일 뿐이야. 최후의 운명을 맞는 것은 자신과 타노스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로켓에게 더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자네는 상냥해."

 

뾰족한 귀가 쫑긋하니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나 잠결인 모양인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르도 뒷말은 소리 내지 않고 삼켜냈다.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한 다네. 나의 용감하고 상냥한 친구여.

    

[날 두고 혼자 갈 생각하지 마]

 

 

 

***

 

 

 

가볍게 여긴 출혈이었으나 새벽을 지새우던 토르는 어느 순간 까무룩 정신을 잃고 잠들어 버렸다. 내리쬐는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벌떡 일어선 그는 가장 먼저 두리번거리며 로켓을 찾았다. 설마 사라진 건 아니겠지. 열이 더 심해지면 안 되는데...상상 만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하지만 그새 고여 흐르는 땀방울이 무색해지도록 눈앞의 로켓은 그루터기에 걸터 앉아 제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수신기를 주무르느라 토르에게 시선도 주지 않는 것이다.

 

"래빗, 이제 괜찮은 건가...?"

"그럼 당연히 괜찮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언제 죽을 뻔했냐는 듯 열이 내린 그는 평소 보다 한층 더 시니컬해 보인다. 얼이 빠진 토르가 좀처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밀림 사이로 고속음을 내며 날아온 거대한 그림자가 어느새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밀라노였다. 내 우주선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하늘을 보며 로켓이 이죽거렸다. 니들은 나 따라오려면 멀었어. 잊었어? 내가 대장이잖아. 멈칫하던 토르도 이내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친구는 망할 스윗래빗이기도 했다.    

     

      

 

 

 

 

 

       

 

 

Posted by 모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