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인 브쿱로켓X아스가디언 토르(토르1 시점)

* 로켓토르 감금아닌 감금플:D

 

 

 

 

 

 

 

 

 

 

 

 

외계인을 조심해!

 

 

 

 

 

 

 

 

 

 

그의 집은 뉴멕시코에 있었다. 뉴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서부 변두리에 위치한 단층 아파트는 입주민이 꼴랑 세 가구밖에 없는 낡은 건물이었지만 매물을 확인한 순간 그는 과감하게 이주를 선택했다. 비가 많이 온 다음날 수도꼭지에서 처음 1,2분 정도 흙탕물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남자 혼자 살기에 괜찮은 집이었다. 식료품점은 차를 타고 나가서 15분 거리에 있었지만 대신 피자 배달이 가능했다. 안 그래도 그는 뉴욕의 고층빌딩숲에 질린 참이었다.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게 빌딩이었지만 그것도 계속 보니 흥미가 떨어졌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선인장처럼 미국답지 않은 이국적인 풍경이 최근엔 더 마음에 들었다.

 

촌구석에서 뭐해 먹고 살 거냐는 말엔 대충 둘러댔다. 카센터에라도 취직하지 뭐. 그는 몇 해 전부터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이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좀 존나 지겨웠다. 조직을 무슨 일수 떼먹고 사는 회사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럴 거였으면 책상 뺄 때 야근수당이랑 퇴직금도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이따금 생명수당도 필요했다)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와, <로켓>. 그것은 조직 내 그의 코드네임이었다. 은퇴를 결심한 뒤로 막 나가는 그에게 보스는 1년 치 휴가를 내주었다. 안식년 같은 거라고 생각해. 퍽 아쉬운 척을 했다. 연락은 계속 할 테니까 전화기 꺼놓지 말고. 좆까라 그래. 3개월 뒤 그는 프랑스 니스로 튈 계획이었다. 이미 해변 근처에 별장도 알아봐두었다.

 

그렇다 해도 뉴멕시코에서의 생활은 꽤 만족스러웠다. 아침 조깅을 하고, 66번 국도를 드라이브 하고,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또 가끔 섹스를 하고소일거리로 해킹을 하거나 가상화폐를 투기하기도 하고 뭐 그랬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늘 예민하게 곤두서 동력을 멈추지 않았던 뇌가 퍼질 무렵 떨어진 날벼락은 그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매끄럽게 흘러가던 일상에 찾아온 잡음. 그것은 어느 날 그의 낡은 아파트 앞으로 배달 된 커다란 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혹시 외계인한테 납치당한 건 아니지?]

 

감시 겸해서 자질구레한 심부름(밀수 경로 및 자금줄 추적)을 시키는 게 좆같아서 한동안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보스가 보낸 문자였다. 과거 네바다와 더불어 뉴멕시코 부근에서 붐이었던 UFO 출현과 소를 납치하는 외계인 따위의 구닥다리 농담이었다. 이참에 진짜 납치된 척하고 잠적해버릴까. 외계생명체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FBI의 보고가 진짜일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보단 귀찮아서 며칠 째 답장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 아침 발신인 불명의 트렁크가 배달 된 것이다.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크기의 화물용 트렁크는 사람이 들어가 있기에 충분해보였다. 반은 경고로, 반은 엿이나 먹어보란 뜻으로 조직에서 보낸 것이었다. 토막 난 시체나 그보다 더한 것이 튀어나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그이기에 태연하게 지퍼를 끌어내렸다. 그러자 열린 틈새로 샛노란 머리카락이 빠져나왔다. 여자시체인가. 외도를 하다 꼬리가 밟힌 정부나 재수 없게 걸린 고용인을 생각했다. 하지만 덮개를 열어젖혔을 때 트렁크 안에 들어있던 것은 여자가 아닌 금발머리의 벌거벗은 남자였다.

 

정말 시체라면 웅크린 모양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있었을 테지만 그가 트렁크를 건드리면서 접은 두 다리를 가슴에 붙이고 있던 자세가 흔들렸다. 그래도 의심스러워서 심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남자의 가슴께로 고개를 숙였을 때 무언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발목과 마찬가지로 두 팔을 앞으로 묶으면서 자연히 모아진 가슴 사이로 깊은 골이 생겼는데(두툼한 승모근이 아니었다면 계속 여자로 착각했을지도) 거기에 손바닥만 한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 크리스마스도 아니건만 빨간색 카드가 꽤 화려했다. 카드에는 남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일주일 뒤에 데리러 가겠다는 짧은 메시지만이 적혀있었다. 카드를 빼면서 닿은 맨살이 뜨끈했기에 그는 부득 이를 갈았다. 차라리 시체가방을 보낼 것이지.

 

트렁크에서 꺼내고 나니 남자의 덩치는 생각보다 더 컸다. 이걸 어떻게 트렁크 안에 쑤셔 넣어왔는지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키를 비롯해 손과 발 모든 게 컸는데 그중에서도 봉긋하게 부푼 가슴이 정말 컸다. 한 손에 잡히기는 할까그는 저도 모르게 남자의 흰 가슴을 움켜잡을 뻔 했다. 색이 다른 꼭지가 뾰족하게 돋아있는 것이 신경 쓰여 시선을 내렸더니 다리 사이에도 만만치 않게 큰 게 보였다. 씨발. 욕을 하며 고개를 들자 이번엔 성난 근육질과 달리 오똑한 코에 긴 속눈썹 따위가 보였다. 뭐 이딴 게 있어.

 

영화배우나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납치해온 것일까. 다시 트렁크를 닫아버릴까 싶었다. 대충 구석에 처박아두고 신경을 끄는 쪽으로 생각이 정리되던 차에 남자의 어깨근육이 움찔거렸다. 숱이 많은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더니 곧 닫혀있던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그게 꼭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여기가 어디오.”

 

목소리가 아직 잠겨있었지만 남자는 의외로 침착했다. 자신을 붙잡은 놈들과 같은 패거리란 생각은 못하는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곧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보았다. 이제 알아챘나, 마주친 시선이 꽤 지긋했다. 아름다운 눈동자로군. 뭐라고? 대답해줄 생각일랑 없었는데 플러팅 할 때나 나올법한 대사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이것을 풀어주겠나, 손목이 저리다네.”

안 돼. 어차피 넌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악당 같은 소리를 하는 군. 얼굴이 아깝게.”

 

오는 동안 트렁크 안에서 머리라도 부딪힌 것일까.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도 내뱉는 소리가 엄청났다. 그리고 난 나쁜 새끼가 맞거든. 그것도 아주 많이. 그가 말하기 전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오딘의 아들이자 천둥의 신 토르라네. 지금은 잠시 권능을 잃었지만 나를 돕는 다면 훗날 아스가르드에서 보답하리라.”

 

그의 추측이 틀렸다. 그냥 약쟁이 새끼였다. 조직에서 유통하는 약 중엔 이렇게 환각을 보여주는 종류가 더러 있었다. 보아하니 어지간히 빨았나 본데. 밀린 약값을 갚지 못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끌려오는 머저리 새끼들 역시 종종 보았다. 흡사 연극 대사처럼 떠벌린 말 중에 그나마 알아들은 건 남자의 이름이 토르라는 것 정도이다. 그마저도 헛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사실은 도널드라든가 그런 이름일지도.

 

그래 토르, 일주일 뒤엔 풀어줄 테니까 그때 보답해주던가.”

 

이참에 약을 끊어 등신아. 손목이 묶인 채 누워있는 토르를 내버려두고 그는 옷장이 있는 침실로 향하려 했다. 아무래도 이대로 일주일을 보내기엔 저 전라가 자꾸 거슬렸다. 피부에 그대로 닿는 찬 공기에 콩알만 한 꼭지가 더욱 도드라져 있었다. 그가 바닥에서 발을 떼면서 부스럭 소리가 나자 토르는 그제야 당황한 모양인지 요란스럽게 상체를 들썩였다. 기다리게기다리라니까!

 

래빗!”

 

설마 제 티셔츠에 프린팅 된 그림을 보고 소리친 건 아니겠지.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손에 집히는 대로 주워 걸친 것이 낭패였다. 그래도 이게 토끼는 아니지 않나. 인상을 구긴 그가 멈춰 서자 토르가 입가를 끌어올려 헤벌쭉 웃었다. 그새 얼마나 뒤척인 건지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내가 그, 그걸 잘 한다오!”

뭐라고?”

 

다시 한 번 깊은 곳에서부터 어처구니없어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Posted by 모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