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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Night, Holy Night

 

 

 

 

 

연인들이 기다렸을 법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었다.

붉은 칵테일 드레스를 차려 입은 이브닝 뉴스의 기상 캐스터는 아쉽다는 첫마디 인사를 뒤로 안개 낀 성탄절을 예고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신정(New Year's Day)까지 열흘가량 이어지는 연말 휴가의 시작이었다. 시가지와 달리 인적이 사라진 주택가는 들뜬 분위기에 흥미를 잃은 노부부처럼 일찍이 잠에 들었다. 어린 소년 홀로 집을 지켜야 했던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로등 불빛만이 텅 빈 거리를 따라 희미하게 늘어선 고요한 밤이다.

 

20대 후반의 프리랜서 카메라맨인 야마자키 소스케는 그 한적하기 그지없는 크리스마스가 퍽 싫지 않았다. 같은 잡지사 동료인 마츠오카 린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탓에 좀 전까지만 해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진 휴대폰은 한동안 진동을 멈추지 않았으나 결국 그의 완고함에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 보낸 문자에는 30분 정도 지나자, 대신 31일 마지막 밤에는 꼭 여동생인 고우와 함께 미트파이를 들고 찾아오겠다며 답장이 왔다. 파티 같은 것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것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고우가 만든 미트파이를 떠올리며 소스케는 천천히 식어버린 커피 잔을 기울였다. 각설탕과 우유를 타지 않은 커피에 미간을 찌푸릴 나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유독 입 안이 썼다. 문뜩 떠오른 그녀의 요리 솜씨 때문이 아니다. 포트에 물을 끓일 요량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하던 걸음이 멈춰 섰다. 그리곤 등 뒤의 패브릭 소파를 향하여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정확히는 소파 너머로 삐쭉 보이는 머리끝에 시선이 꽂혔다. 스포츠채널에서 재방송하는 미식축구 중계를 보다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들려했던 소소한 이브 계획은 유감스럽게도 오래 전에 어긋나버린 것이다.

 

“<나 홀로 집에> 볼래?”

…….”

요즘 애들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몰라. 네가 보고 싶은 걸 말해.”

 

무뚝뚝한 말투 때문인지 응답하는 목소리가 없다.

 

[너는 가끔 무서워 보일 때가 있어.]

 

언젠가 린이 말한 적이 있었다. 때때로 같은 성인마저 다가가기 어렵다 토로하던 인상이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상대는 하물며 어린애이다.

 

[눈에서 힘을 빼는 게 좋아.]

 

린의 가벼운 충고를 되새기며 멈춰 섰던 걸음을 되돌렸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튀어나온 머리끝이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한 발짝, 한 발짝 거실 바닥에 깔린 부드러운 러그를 밟는 소리에도 바짝 오그라드는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지경이다. 아이에겐 애석하게도 멀지 않은 거리가 단숨에 좁혀지고 곧 눈이 마주쳤다. 한결 누그러져 있을 자신의 표정을 의식하며 소스케가 아이가 기대고 있는 소파의 팔걸이에 한쪽 손을 얹었다.

 

널 무섭게 하려는 게 아니야.”

…….”

 

어린애를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맞은편의 기분을 살피고 단어를 고르는 일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앞으로 그가 말하는 한 마디에 당장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처럼 아이는, 소년은 떨고 있었다. 입안에서 몇 번이고 곱씹었다 내뱉는 것처럼 소스케는 가능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따뜻한 거라도 마실래?

…….”

코코아정돈 있으니까.”

아저씨를본 적이 있어요.”

 

하마터면 놓치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우선 긴장을 풀기위해 특별히 더욱 달게 탄 코코아에 선물로 받았지만 찬장 구석에 애물단지로 박혀있는 마시멜로를 하나 띄워줄 셈이었다. 그러던 순간 꾹 닫힌 채 바들바들 떨기만 하던 마른 입술이 달싹여진 것이다.

 

나도 너를 본 적이 있어.”

마코토.”

 

소년의 이름은 마코토였다.

이렇게 마주한 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아이의 얼굴과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웃과 교류가 적은 위네트카 타운이지만, 마당에 놓인 바퀴가 작은 자전거나 파란색 롤러스케이트 따위로 옆집에 어린애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한 달 전쯤인가 불우이웃돕기 성금마련을 위한 프리마켓 전단지를 들고 방문한 어떤 부인은 이웃집 부부가 입양했다는,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동양인 사내아이에 대해 운을 떼더니 그렇게 한참을 수군거리며 현관 앞을 머물다 가기도 했었다. 소문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묘하게 상기된 질문에-소리가 들린다고 하잖아요, 혹시 이상한 점은 없던가요?-자신은 무어라 대답했던가.

 

평범하게, 순한 아이 같던데요.

 

드물게 있는 이른 퇴근길에선 수영 교습을 마친 모양인지 노란색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햇볕에 밝은 갈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은 마르지 않고 끝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제 키의 절반만한 가방을 들고 뒤꿈치를 들어 올려 초인종을 누르던 녀석은 동양인치고도 또래보다 한 뼘은 더 작았다. 영화 속 소년과 마찬가지로 아직 작고 어린아이였다.

 

마코토.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혹스런 머릿속을 재정비하며 어떻게든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부족한 말주변을 짜내려던 그때, 거실 한쪽의 텔레비전에선 어느 틈에 12시가 지났는지 1225일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화려한 영상과 함께 익숙한 멜로디의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빛을 내며 번쩍이는 브라운관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소스케가 중얼거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쓰.”

 

엉겁결에 내뱉은 소리에도 아이는 눈치를 보며 착실히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아직 자라지 않은 조그만 입이 우물거리는 영어발음이 어색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가로운 생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확실히 자신의 집 소파에 앉아있는 소년의 모습이 어색하기는 했다.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각. 어린 아이는 일찍이 잠들었어야 했고. 크리스마스 날 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세간에선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신고는, 안 하나요?”

 

짧은 정적을 깨운 것은 다시금 마코토의 목소리이다.

 

아저씨는 봤잖아요, 내가 우리 아빠를.”

 

그 말을 잇는 내내 마코토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 평소 둔감하다 일컬어지던 소스케마저 가슴 한구석이 저릿한 것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키웠던 자그마한 아기동물을 보는 것처럼. 경계심을 놓지 못하고 새하얀 털을 삐쭉삐쭉 세우며, 그럼에도 축 쳐진 눈매 끝에 눈물방울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 때문에 아빠가.”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마코토.”

, 하지만 아빠가 죽었는걸요. 경찰에 신고해야죠.”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이 금세 작은 볼을 적셔버린다. 흐느끼는 아이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그 시절 안쓰럽게 울고 있는 아기동물을 어떻게 달랬는지 떠올리며 소스케는 혹여나 눈썹을 찌푸리지 않도록 애썼다.

 

모든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는 건 아니지.”

 

팔을 뻗어 동그란 어깨가 아프지 않도록 살짝 움켜쥔다. 놀란 모양인지 딸꾹질처럼 터져 나오는 짧은 호흡과 함께 기울어지는 상체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옛 기억 속에 그랬던 것처럼, 뒤로 둘러진 손으로는 터무니없을 만큼 작게 느껴지는 등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 더 등을 토닥여주자 소스케의 품속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오르락내리락 힘겹게 들썩이던 어깨가 차차 수그러드는 것이 보였다. 맞닿은 가슴에 느껴지는 어린아이 특유의 뜨거운 체온에 이번엔 조금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괜찮아, 마코토.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어.”

 

 

 

 

 

연인들이 기다렸을 법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었다.

붉은 칵테일 드레스를 차려 입은 이브닝 뉴스의 기상 캐스터는 아쉽다는 첫마디 인사를 뒤로 안개 낀 성탄절을 예고했다. 그런 밤이었다. 몇 겹에 걸쳐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소리마저 앗아갔다. 밤의 어둠마저 빼앗겠다는 듯 물살처럼 퍼져나간 희뿌연 안개는 이윽고 마을 전체를 감싸 안았다. 파도 위를 떠다니는 부표처럼 아른거리는 주황색 불빛만이 그곳에 할로겐 등이 서있음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그야말로 고요한 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겠다고 소스케는 생각했다.

 

아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고에 숨어들기 위해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아이의 뒤에는 얼큰하게 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따라붙고 있었는데, 목덜미를 낚아채기 위해 우악스럽게 뻗은 팔은 실상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꼴밖에 되지 못했기에 그 모습이 퍽 우스웠으리라.

 

지독하게 풍기는 싸구려 보드카 냄새와 제 몸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남자에 불구하고 아이의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땀에 젖어 달라붙는 티셔츠가 움직이는 것을 방해했다. 당장이라도 갈고리처럼 파고든 손아귀가 어깨를 낚아채거나, 그대로 목을 졸라 올 것만 같아 맞부딪히는 이빨마저 딱딱 소리를 내며 떨었다. 멍이 든 허벅지를 타고 실금이 흘러내릴 때쯤 아이는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안개를 헤치고 나올 남자를 향해 빌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잘못 했어요. 잘못!”

 

그 순간이었다. 억하고 불길하게 끊어진 거친 숨소리가 안개 너머에서 들려온 것이다. 이어서 무언가 둔탁한 것이 넘어지는 진동이 시멘트 바닥을 울렸다. 쌓아놓은 선반이나 쇠기둥 같은 것이 쓰러진 것일까? 휘감아오는 안개가 감각을 부식시키는 동안 공포마저 잊은 채 그 자리에 눈만 끔벅거리며 서 있는데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냄새는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아이는 아직 어렸지만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선명한 색깔도, 끈적거리는 감촉까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기특하게도 아이는 그것이 죽음임을 알았다.

 

맥주를 사들고 돌아오던 소스케가 마코토를 그의 집으로 데려온 것은 잠시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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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의 번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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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소스마코] M의 실험

2015. 11. 8. 01:26 from 프리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다.

 

 

 

 

 

 

 

:M의 실험

 

 

 

교감(交感)이란, 글자 뜻 그대로 감각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상대방과 접촉하고 그에 따른 반응을 나타내는 일련의 행위. 오직 살아 있는 존재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가치죠. 마치 그 사실 처음 발견해낸 과학자 마냥 레이는 상기 된 얼굴로 말했었다. 유레카! 마코토 선배 혹시 아시나요? 당시 시칠리아는 목욕 문화 붐이 한창이어서 아르키메데스가 알몸으로 거리를 뛰어 다녀도 놀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대요. 정말 굉장하지 않아요? 유레카! 으응, 굉장하네. 정말로 굉장한 건 지금부터라고요. 이 발견 앞에선 황금 왕관의 무게를 재는 원리도 만유인력의 법칙도 전부 시시하게 느껴질 거예요. 왜냐면 어차피 그것들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마코토 선배는 식물이 사람과 교감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세요?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고요. 학교 화단에 심어져 있는 꽃이나 마당에 피어난 잡초같은 것들 말입니다. 현재 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신력 있는 임상실험에 따르면 식물 또한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요. 좋아한다, 예쁘다 같은 말을 들려주면 생기가 돌면서 꽃잎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지만 싫어한다, 나쁘다 같은 말을 계속 들려주면 이파리가 시들고 뿌리가 썩어버린다는 거죠. 그 결과 애정과 칭찬의 말을 듣고 자라난 자두와 복숭아 나무에선 가장 달고 탐스러운 과실을 수확할 수 있었다는 박사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박사의 이름을 붙인 M의 실험이 탄생하게 된 거죠. 정말 굉장하지 않나요?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한 거냐."

 

 

"모모노우치 박사님."

"일본인 박사가 영국까지 가서 연구를 한 거야?"

"글쎄, 레이가 보여준 잡지에선 거기까지만 쓰여 있었어."

"그런 쓸데없는 잡지 볼 시간 있으면 휴대폰 문자나 확인 해."

 

 

밤늦게 마코토가 현관을 들어설 때부터 소스케는 불만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분명 오후에 그가 보낸 문자를 마코토가 제때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평소라면 저녁은 먹었냐는 식으로 운을 띄우며 잠시간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을 터인데 오늘의 소스케는 마코토가 벗은 신발을 내려놓기도 전에 그의 손목을 움켜쥐고 침대가 있는 안쪽으로 향했다. 셔츠를 푸는 손길이 오늘따라 서툴렀고 기어코 마지막 단추 하나가 거친 손가락 끝에 실밥을 풀어내며 튕겨져 나갔지만 멈칫하는 것도 잠시 허리 벨트가 뱀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순식간에 헐렁해진 바지춤이 허벅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확실히 그들에겐 시간이 없었다. 막차까지 남은 시간은 채 한 시간이 안 되니까. 아마 그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섹스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찝찝한 기분을 안고 남은 일주일을 보낼 테고 다음 주말이나 되서야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테니 소스케의 심기가 좋지 않은 이유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물론 그가 자신 외에 다른 여자, 혹은 남자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으읏그래서 맛있는 자두와 복숭아가 열렸다면 말이야."

"류가자키 녀석한테도 그런 사이비 같은 잡지는 보지 말라고 일러둬."  

"그럼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 나무에선 뭐가 열리는 걸까."

 

      

소스케는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않았다. 대신 부족한 시간 만큼이나 더욱 급하게, 세게 마코토의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물었다. 느껴지는 통증에 고개가 옆으로 젖혀지면서 감추려고 애쓰던 얼굴이 드러난다. 발갛게 물든 뺨은 흥분의 기색보단 소스케의 맨션으로 오는 동안 맞았던 밤바람의 영향이 더욱 컸다. 혀를 섞으며 감싸쥔 뺨이 아직은 차가웠고 오히려 뜨겁게 열을 내는 것은 머리카락 아래 숨겨져 있는 새빨간 귓불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닿아 있으면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목울대가 일렁거리면서 입 안에 고이는 묽은 침을 가까스로 삼키는 소리도, 잇사이로 새어나오는 들뜬 숨이 입술을 적시는 소리까지 전부.     

 

 

"얼굴 보는 거 싫어…."

"얼굴도 안 보고 하는 섹스가 좋은가 보지."

"흣, 놀리지 마, 소스케."

"너야 말로 사람 놀리지 마."

"내, 내가 언제…!"

"모모노우치니 뭐니 하면서 먼저 말장난을 시작한 건 너잖아."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맞닿은 피부를 소름 돋게 하는 와중에도 소스케의 손은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손을 뻗어 막으려고 했지만 허공을 붙잡으려 버둥거리는 꼴만 될 뿐이다. 애초에 힘이 빠져있는 손아귀로 무엇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상대로 커다란 손이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고 어렵지 않게 틈을 벌린다. 밖에서 달고 왔던 찬 냉기가 구석구석 매만지는 손길에 녹아내리듯 사라지자 이번엔 뜨거운 무언가를 삼킨 듯 열덩이가 허리 아래로 쏠리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해, 마코토. 나한테 듣고 싶은 말이 뭔지. 난 네가 먼저 말하기 전까진 말하지 않을 거야."

 

 

피할 여지따위 없도록 급소를 감싸쥐고 단호하게 내뱉는 모습이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휴대폰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문자를 확인한 뒤에도 일부러 뒤늦게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해가 지도록 오지 않는 자신을 과연 기다렸을까. 어쩌면 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길고 단단한 손가락으로 예민한 끝을 짓누르며 대답을 재촉하는 소스케가 원망스러움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에게 솔직하게 반응하는 제자신이 싫어 눈 앞이 핑 돌 지경이었다.        

 

 

"나는 좋은 말을 들으면 좋아진다고, 읏생각해."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다.

 

 

"그러니까좋아한다고 말해 줘."

 

 

결국 사정보다도 먼저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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のうち(스모모모 모모모 모모노 우치)

자두도 복숭아도 복숭아의 일종

 

일본의 빠른 말 놀이...간장공장공장장같은 거...구라쟁이 마코쨩...난 뭘 하고 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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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노님 :

[Free!/소스마코] THE GAME

2015. 8. 23. 17:17 from 프리

 

 

 

 

 

 

세계 제 1의 공항임과 동시에, 2008년 이후 시카고 공항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공항이라는 타이틀을 뺏어온 명성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Hartsfield-Jackson Atlanta International Airport)은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 달 전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벌어졌던 기상천외한 테러 뉴스에 관해선 다들 까맣게 잊은 듯, 벽면에 달린 전광판의 현란한 광고 사이로 이따금 테러주의를 알리는 캠페인방송이 흘러갈 뿐 애틀랜타 공항은 언제나의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다.

 

여러 항공사들의 교차점이 집중되는 허브답게 하루에도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쳐가며 똑같은 터미널을 지나갔으나 천차만별한 머리색과 피부색만큼이나 그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타인이었다. 고막이 울릴 만큼 북적거림으로 가득한 로비에서도 그들은 귓가에 스마트폰을 바짝 갖다 댄 채 각자의 비즈니스를 해결하기에 바빴으며 대화를 나누는 무리는 드물어 보였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미아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장소 1순위가 공항이라는 신문기사의 내용을 떠올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코토는 이내 인파의 행렬에 가려져 있던 구석의 벤치를 발견해냈고, 그쪽으로 제 덩치의 절반만한 캐리어를 끌고 갔다.

 

손바닥에 땀이 맺힐 만큼 움켜쥐고 있던 캐리어손잡이를 내려놓고 벤치에 걸터앉으며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발 디딜 틈도 없구나, 이래선 국제미아가 되도 할 말이 없겠어.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문뜩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것이었다. 그는 미아가 될 수 없었다. 미아란 찾아줄 사람과 돌아갈 곳,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성립되는 거니까. 설사 그가 길을 잃어버린다 해도 마코토를 찾으러 와줄 사람은 이곳에 없다. 돌아가야 할 장소 또한 없다. 그 증거로 마코토의 지갑 속에는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티켓이 없었다.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들려온 목소리는 흠 잡을 데 없는 영어를 쓰고 있었지만 마코토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별안간 나타나선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남자가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찌됐든 자신도 동양계였고, 국제공항이니만큼 혈색 좋게 그을린 피부색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캐리어를 한쪽으로 치우곤 고개를 끄덕거리자 남자는 등에 지고 있던 배낭을 먼저 내려놓고 그다음에 긴 다리를 접으며 벤치에 앉았다. 움직이는 그를 따라 워커의 단단한 굽이 매끄러운 대리석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색이 바래져가는 워커는 주인과 함께한 생활만큼이나 낡아보였지만 길이 잘든 모양인지 그에게 딱 맞춘 것처럼 어울렸다. 그리고 아주 컸다. 제 팔뚝의 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커다란 갈색워커.

 

혹시 군인이세요?”

신발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그것보단 억양으로요. 이 근처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요.”

맞습니다. 전 파병군인이에요. 하지만 억양은 미군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전에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했거든요. 추운지방일수록 억양이 강해진다고 하죠. 덕분에 화가 난 것이 아니냐고 자주 오해를 사곤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러는 당신도 군인 같은데. 어디에 다녀왔습니까? 아프간? 이라크?”

그걸 어떻게.”

애틀랜타는 지금 한겨울인데, 당신 지금 외투도 안 입고 있잖아요.”

 

남자의 말에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 듯 마코토는 얇은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는 제 팔을 무심코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의 짙은 눈썹이 한번 들썩거리더니 곧은 선의 입매가 미끄러지면서 실소와 비슷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소스케 야마자키입니다. 이라크에서 이제 막 전역하고 돌아왔죠. 호쾌히 앞으로 내밀어오는 악수를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뒤늦게 애틀랜타의 추위를 느끼며 마코토가 차갑게 식은 손으로 소스케의 손을 맞잡았다. 발만큼이나 커다란 손이었다. 6피트가 넘는 장신인 저와 비슷한 체격이면서 살짝 손아귀를 움켜쥔 것만으로도 차원이 다른 악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주쳐오는 강렬한 시선을 피해 소스케의 등 뒤로 저 멀리 이륙하는 보잉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코토가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마코토 타치바나입니다. 이라크에서 왔지만전 종군기자에요.”

 

 

 

 

 

 

: THE GAME

 

 

 

 

 

 

기자일 줄은 몰랐습니다. 현역이 아니라니 미군이 아쉬워하겠군요.”

전쟁터로 취재를 가는 거니까요. 제 몸 정도는 스스로 지켜야죠.”

하긴, 이라크는 엿 같은 곳이었죠.”

 

정말로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마코토의 느릿느릿한 짧은 대답에도 소스케는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와 강한 인상 탓에 살가운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지금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순전히 소스케였다. 자신만만한 태도와 거리낌 없는 화법에, 그가 말하는 러시아 극지방의 억양이 섞여 낮은 목소리는 꼭 포격처럼 날아왔다. 사막 곳곳에 떨어져 사나운 모래폭풍을 일으키던 포탄과 같이, 여기저기 움푹 파인 구덩이에 사정없이 흔들리던 지면과 같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그의 시선이 마코토는 조금 불편했다.

 

코며 입이며 구멍이 뚫린 곳마다 모래알이 밀려들어와서 고생이었죠. 전투를 마친 후에 하는 샤워가 그때는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무섭지는 않으셨나 봐요?”

뭐가 말입니까?”

전쟁터니까 부상자나, 전사자가 생길 수도 있고.”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하는군요.”

 

뒤늦게 마코토는 그것이 실례가 되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에게서 비난이나 조롱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에 무언가 생각하는 듯 손가락을 겹친 양팔을 구부린 무릎 위에 걸쳐놓고 대리석 바닥을 한번 쳐다봤다가, 지나가는 행인을 한번 쳐다봤다가 한동안 소리 없이 턱을 움직이기만 하던 소스케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앞에 테러리스트를 두고 무섭다는 생각을 먼저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그리고 나는 이런데 흥분하는 성격입니다.”

?”

내 목이 언제 날아갈지 모를 상황이면 좆이 선다구요.”

 

마코토는 금세 그가 너스레를 떨며 농담이라고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소스케는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는 마코토를 내버려둔 채 무료하다는 듯 하품을 내뱉는 것이었다. 쳐진 눈꺼풀 아래 동그란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을 모른 체하며 소스케가 마저 이야기를 계속했다.

 

, 피는 피를 부른다는 소리가 있기는 합니다.”

맥베스의 대사로군요.”

책을 읽어보았습니까?”

아니오. 하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들어봄직한 말이잖아요.”

한번 묻은 피 냄새는 여간해선 지워지지 않습니다. 애초에 피를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죠. 나의 일은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고, 그들을 사형대로 올려 보내는 것이지만 이점에선 그 남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한 달 전쯤인가 베이징 공항에서 벌어진 폭파사건 말입니다.”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곤 해도 게이트 하나를 날려버린 폭파사건인데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니 신기하죠? 나는 이제껏 그런 테러는 본 적이 없습니다.”

뉴스에서 언뜻 본 것 같군요. 운이 좋은 경우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건 테러리스트의 운일까요. 그 장소를 피해간 사람들의 운일까요?”

게이트 하나가 날아가고도 운행에 차질이 없는 베이징 공항의 운이겠죠.”

 

집요하게 말꼬리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도통 화를 내는 기색이 없던 마코토였으나 내심 예민해진 모양인지 일단락 짓는 목소리에서 드물게 섞인 짜증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금세 감정을 드러낸 자신에게 놀라며 천진한 눈매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에 소스케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어디까지를 이 남자의 진짜 모습이라 믿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이야기를 합시다. 이 다음엔 어떤 일정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딱히 다음 행선지를 정한 것은 아닌데.”

그럼 나와 함께 근처 호텔로 식사를 하러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해산물요리가 괜찮다고 하더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미안하지만 개인적인 용건이.”

잠깐의 식사시간도 함께하지 못할 만큼 급한 일인가봅니다? 그렇다면 나도 돕고 싶습니다. 마침 내겐 아무런 일정도 없거든요.”

식사를 하러 가도록 하죠.”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서는 마코토의 파리한 안색에는 체념이 어렸지만, 어느새 배낭을 짊어지고 마코토의 캐리어손잡이까지 낚아챈 소스케가 주저하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둘만의 대화를 나누기에 나쁘지 않았던 구석의 벤치를 벗어나 공항을 빠져나가기 위해 인파에 끼어들 무렵 소스케가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보이는 것은 뒷모습뿐이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앞서가는 남자의 등을 좇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었던 마코토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는 주머니 속에 감추어져 있다. 모가 난 형체만이 함정처럼 드러나 있을 뿐이다.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날카로운 송곳일지, 그저 남자가 즐겨 피우는 여분의 담배개비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같은 이라크지부에서 근무했는데 어째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일까요?”

기자가 출입할 수 있는 구역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시한 대답을 원한 게 아닌데.”

살아서 만나려고 그랬나보죠.”

 

당신 마음에 들어.”

 

 

 

 

*  *  *

 

 

 

 

, 으으읍그만!”

 

현관문의 자동 도어락이 잠기기도 전에 소스케는 마코토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갑자기 가슴이 밀쳐져 턱하고 막혀온 숨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이어서 딱딱한 벽에 부딪친 충격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에게 항의하려 마코토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소스케가 먼저 호흡을 빼앗으려는 듯 입술을 겹쳐왔다. 꾹 다물린 마른 입술을 강제로 벌리며 굵은 혀가 무자비하게 파고든다. 치열을 훑으며 뒤로 도망치려는 혀를 옭아매는 움직임은 애무라기 보단 폭력에 가까웠다. 힘을 실어 짓누르는 압박에 고통스러운 숨이 차오른다. 들이마시지도, 내쉬지도 못한 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차마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술이 마찰하는 낯부끄러운 소리와 함께 새어나왔다. 옥신각신 끝에 마코토가 인상을 쓰며 소스케를 떨쳐냈을 땐 화끈거리게 부어오른 입술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지고 있었다.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백치도 아니고 그 말을 믿은 건 아닐 거 아니야.”

 

애틀랜타 공항을 나설 적만 해도 그는 제멋대로일지언정 호쾌한 남자였다. 그러나 호텔 상층부까지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직후부터 마코토의 손목을 움켜쥔 남자는 전에 알던 소스케가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건만 마코토의 몸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그들 주위의 온도를 영하까지 내리는 것은 한겨울의 찬바람이 아니라 형형한 광기마저 품고 있는 날카로운 눈빛이다. 본래 야성적인 외모와 소름끼치게 어울리는 뒤틀린 비웃음에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그 커다랗고 무서운 악력의 손아귀가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조여 뼈를 부러트릴 것 같았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호텔방에 와서 할 게 달리 뭐가 있겠어.”

취조와 암살?”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그럼 구애라고 해두지. 말했잖아, 당신 마음에 든다고.”

나는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내기해볼까?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당신도 내 옷을 벗겨봐. 내가 어디에 경찰수첩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거잖아.”

왜 나를 의심하는 거죠? 우린 그냥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잖아요!”

네 손에 묻은 피 냄새를 맡았다고.”

 

붙잡힌 손목이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지만 남자는 태연하게 마코토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는 것이었다. 촉각이 곤두서있는 살갗에 따뜻한 숨이 와 닿자 놀란 어깨가 움찔거렸다. 식은땀이 맺힌 살 냄새를 만끽하는 것으로 모자라 안쪽 살 위에 소스케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부끄러운 소리를 내며 붙었다 떨어 지다를 반복하던 입술이 기어코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저려오는 손목 위에 붉은 자국을 남긴다. 꼼짝없이 굳어버린 몸에 마주친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되자 그가 공항에서 그랬던 것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좆이 섰어.”

 

 

 

 

*  *  *

 

 

 

 

요즘 FBI는 성고문 같은 것도 배우나보죠?”

설마, 그건 순전히 내 테크닉이야.”

변태성욕자인줄 알았으면 안 했어요.”

, 당신도 엉덩이 맞으면서 사정하던데.”

 

 

최고급 호텔의 침대시트는 더할 나이 없이 부드러웠지만 붉은 복숭아마냥 퉁퉁 부어오른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앉아있기란 괴로운 일이었다. 부끄러움을 참고 바람을 쐬기 위해 쓰라린 엉덩이를 밖으로 내놓고 맨몸으로 침대 위에 엎드려 있던 마코토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스케를 노려보았다. 격렬한 섹스의 흔적은 아직도 방안 곳곳에 남아있었다. 비릿한 냄새와 끈적거리는 땀 기운이 사라지지 않아 샤워가 하고 싶었지만 당장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는 못했다. 먼저 샤워를 마치고 바지까지 꿰어 입은 소스케가 뒤늦게 수건에 물을 적셔와 마코토의 몸을 닦아주었지만 그가 했던 섹스만큼이나 배려있는 손길은 아니었기에 다리 사이에선 여전히 남자가 쑤셔 넣었던 정액이 꾸역꾸역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는 알아냈나.”

당신이잖아요. 경찰수첩이 아니라 FBI수첩이긴 했지만.”

맞아. 하지만 우리 둘 다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잖아.”

 

마코토의 몸을 닦아주던 수건을 던져놓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긴 소스케가 침대 곁에 놓여있던 캐리어를 발로 툭 걷어찼다. 여유롭던 기색은 사라지고 다시금 날카로워진 눈빛이 침대에 누워 고개만을 비스듬히 돌아보고 있는 마코토를 응시한다.

 

알카트라즈 수용소로 갈 준비는 됐어?”

 

묵묵히 소스케의 시선을 받고 있던 마코토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시트를 끌어안고 있던 모습과 달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다리로 침대에서 내려온 마코토가 소스케의 앞까지 다가와 남자의 얼굴을 마주본다. 순해 보이는 인상과 지난밤 어린 물기에 색이 짙어진 홍채만으로는 그의 속까지 알 수 없다. 미안하지만. 힘겹게 입술을 뗀 마코토가 허리를 굽혀 캐리어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폭탄은 여기에 없어요.”

 

그리고 그가 캐리어에서 꺼낸 것은 놀랍게도 총이나 칼 따위의 무기가 아니었다. 겨우 손가락 크기만 한 스틱에 도드라진 버튼이 달려있는 그것은 무언가를 작동시키는 스위치처럼 보였다. 상황은 반전되어 이번엔 마코토가 소스케에게 요구를 제시할 차례였다. 협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지 질린 얼굴색이 퍽 안쓰러웠지만 마코토는 흔들림 없는 손끝으로 작동스위치의 끝을 소스케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폭탄은 아직 애틀랜타 공항에 있어요. 폭탄을 실은 화물선이 연착하는 바람에 난 그걸 기다리고 있었는데무선조작이 가능해서 이 작동스위치를 누르는 것만으로 베이징 공항에서처럼 게이트 하나를 박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날 데려온 덕분에 이제 애먼 사람들이 죽게 생겼군요.”

…….”

당신에겐 나를 잡는 것보다 무고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더욱 중요할 테죠. 순순히 나를 돌려보내준다면 이 작동스위치를 넘기겠습니다.”

 

단호한 음성이 고요한 침실을 울린다. 대담하게 다가서는 마코토에 이번엔 소스케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리곤 의미모를 한숨을 내쉬더니 걸음을 옮겨 침대 맡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돌발행동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에서 다급함이나 초조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는 마코토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소스케가 침대 맡에 놓여있는, 첫 만남에서부터 그가 매고 있었던 배낭을 집어 들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해줬으니 나도 솔직하게 말해주지.”

허튼 수작이라면 곧장 스위치를 누를 겁니다.”

 

배낭을 여는 손길을 따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등이 근육들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훤히 보였다. 저절로 마른침이 목울대를 넘어가고,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 만큼 작동스위치를 움켜쥔 손아귀가 부들부들 떨리던 그때 소스케가 한 손으로 배낭에서 꺼낸 물건은 다름이 아니고 테이프로 감겨진 검은 박스였다. 그러자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 긴장이 서려있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억눌러왔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워하는 마코토를 달래려는 듯 자연스레 팔을 뻗어온 소스케가 떨고 있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자신을 가두는 그의 품은 단단하지만 또한 뜨거워서 마코토는 머릿속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화물선이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한 시점부터 폭탄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미국항공에서 연착이야 흔한 일이지만 의도된 연착이란 건 설명할 필요 없겠지.”

처음부터 다 알고 계획했던 거군요.”

당신이 나와 함께 여기서 죽고 싶다면야 난 얼마든지 사지가 찢겨 죽을 각오가 되어있어.”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전부 다.”

거짓말.”

너에 대한 건 전부 다 알아. 마코토.”

 

피는 피를 부른다. 피를 흘리던 것은 처음부터 자신이었고 그는 냄새를 맡고 쫒아온 포식자일 뿐이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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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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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바닷가 근처 성당에서 치러졌다. 신부 쪽이 신자인 모양이라, 그렇다 해서 너무 종교적인 치레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고 햇빛에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도 예쁘고 적당히 정숙하면서도 아담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린이 기뻐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친우로서 가장 바라 마지 않는 것은 린의 행복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린과 아름다운 신부로, 세상에서 가장 축복해주고 싶은 결혼식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지금 이순간 어떠한 내색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새하얀 레이스와 꽃으로 장식 된 식장에서 1년 전에 헤어진 옛 연인을 만나게 되더라도.

 

 

 

: 소스마코

Wedding March

 

 

 

소스케는 남색셔츠를 입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희미한 도트무늬가 찍혀있고 소매를 두 번 접어올린 터라 칙칙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넓은 어깨를 따라서 곧게 떨어지는 선의 셔츠가 소스케에게 잘 어울렸다. 언젠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매일 트레이닝 져지 차림만 보다가 드물게 셔츠나 정장을 입으면 같은 남자로서 부러워지는 동시에 가슴 위를 사르르 간질이는 것처럼 설레게 된다고 마코토가 말했다. 나는 아마 또 한 번 반하게 된 걸지도 몰라.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밑에 숨겨진 동그란 귓볼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놓고 부끄러운 말을 했다. 접어올린 소매 아래에는 심플한 시계 뿐인 단단한 팔목이 보인다. 자연히 그 끝으로 시선이 향한다. 손가락은 비어있었다. 무심코 빈 자리를 확인하는 자신에 놀라고 말았다. 괜찮다. 괜찮아. 벌써 1년 전 일이야.

     

그 사이에 린과 신부가 입장하였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무려 린의 결혼식이었다. 녀석이 오지 않을리가 없다. 왜 느닷없이 깨닫게 된 것처럼 안이하게 생각했을까. 식장으로 오면 마코토를 만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예상했어야 했는데, 무방비한 상태에서 소스케는 놀라고 말았다. 인상을 구기고 표정을 감추었지만 늘 그랬다. 언제나 녀석 때문에 놀라고 만다. 오랜만이네, 야마자키군. 뻣뻣하게 서있는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놀랍게도 마코토였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소스케라고 불렸던 때가 분명 있었다. 나도 마코토로 괜찮아. 소리내어 여자애를 닮아 곧잘 오해를 사고, 그럼에도 잘 어울렸던 이름을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 사이 주례가 끝나고 린과 신부가 버진로드 위를 걷고 있었다. 파이프오르간의 웨딩마치가 울리고 여기저기서 축포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꽃가루 때문인지 신부의 손을 꼭 붙잡고 상기 된 린의 얼굴 때문인지 슬쩍 돌아본 마코토의 눈가는 조금 젖어 있었다. 괜찮다. 괜찮아. 자신은 눈물이 없는 편이다.

 

"두 분은 키가 크시니까 맨 뒤에 나란히 서세요."

 

콕 집어 가리키는 사진사의 재촉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소스케와 마코토는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는 줄의 가장 뒤로 향했다. 뒷줄엔 그들뿐이었다. 변죽 좋게 나기사와 모모가 신부 쪽으로 가서 피스 포즈를 취한 터라 식장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그들은 웃을 수 없었다. 이제 사진을 찍을 텐데, 린의 결혼식 사진인데.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야만 했다. 못내 입술을 깨물던 마코토가 흘깃 눈치를 보자 소스케 역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입매가 굳어있다. 차마 그 위까지 올려볼 수 없었다. 1년이나 지났지만 눈동자를 마주치는 것은 아직 무리였다.

   

"자, 찍습니다~ 웃으세요!"

 

좀처럼 어색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하루카 때문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마지막에 사진사는 경쾌한 목소리로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자신은,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우습게도 이것이 나란히 함께하는 첫 사진이었다. 새삼 지금껏 둘 사이에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떠한 미래도 약속하지 않았구나. 그렇기에 헤어지는 것 또한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어떠한 이유로 헤어졌는지는 가물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 애써 되짚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너 또한 기억하고 있을까. 잊지 않고 있을까.

 

언젠가 또 다시 만나게 되겠지. 어쩌면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결혼식이 될지도 모른다. 고우의 결혼식? 하루의 결혼식? 그러자 문득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1년이나 지났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2년 뒤면, 3년 쯤 지난 무렵에는 나아질까. 마주보는 것이 가능해질까.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 치우지 못한 물건들과, 사라지지 않은 습관들까지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Posted by 모노님 :

 

[소스마코] Bitter Sweet Chocolate


소스케는 줄곧 테이블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무언가'이다. 겨우 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였다. 가운데 매듭이 단단히 묶여있던 빨간색 두꺼운 리본을 풀고ㅡ주인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연분홍색 유산지 위에 동전만한 초콜릿 덩이들이 옹기종기 담겨져 있었다. 쉘 초콜릿 안에 부드러운 가나슈를 듬뿍 채우고 폴폴 날리는 코코아가루 위를 구른 트러플 초콜릿은 보기만 해도 혀끝이 저려올 정도로 달아 보인다. 코끝을 간질이는 단내 뿐 만이 아니라, 어딘가 엉성하지만 꽤나 공을 들여서 손수 만든 기색이 역력한 당분 덩어리에 불만스러운 듯 주름진 미간이 더욱 어두워진다. 처음 마코토가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은 그 순간부터 탐탁지 않았다. 무심코 작고 새하얀 손이, 가느다란 팔이 건넨 상자를 받아드는 그를 상상한다. 소스케는 잘근 입술을 씹었다.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러던 중 마침 우연히, 혹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가온 마코토와 시선이 마주쳤다. 말랑말랑해 보이는 도톰한 눈꺼풀 아래로 상냥한 색의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접히고 덩달아 살짝 벌어진 입술도 가늘게 웃는다. 지금처럼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승낙이나 거절을 말하였을까. 저는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나지만, 그렇지만 넌 혹시 단 것을 좋아하던가. 무엇 하나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에 이유 모를 짜증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또다시 텁텁하게 마른 입술을 잘근 씹으려던 그때에 문득 마코토의 손이 뻗어 왔다. 흠칫하는 상반신이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그가 먼저 닿았다. 입술 끝에서 뭉개지는 진득한 감촉. 분처럼 가루를 날리며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진한 코코아 냄새. 벌어진 입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동그란 덩어리. 혀끝이 닿고 처음으로 느껴지는 맛, 낯선 자극. 이어서 배어나오는 축축하게 젖은 군침. 입 안 가득 녹아내리는 트러플 초콜릿. 느닷없는 제스쳐에 황당하단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소스케에 마코토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미안, 계속 쳐다보기에 먹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 고우쨩이 나눠 준건데ㅡ제멋대로 입안을 구르는 쉘 초콜릿이 혀 위에서 반쯤 녹아내릴 때까지 멈칫한 상태 그대로 굳어있던 소스케는 뒤늦게야 친우의 여동생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화났어, 야마자키군? 초콜릿을 집을 때 묻었는지 기다란 손가락 끝에 묻어있는 코코아가루를 부푼 입술과 혀끝으로 대충 훔쳐내며 마코토가 소스케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런 것 아니야. 대답을 해주어야 했지만 여전히 입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초콜릿 때문에 무리였다. 쉘이 녹아내리자 안에 들어있던 가나슈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농도 짙은 다크초콜릿 크림이 혀끝에 엉겨든다. 쓰다. 그에게 대답을 하기 위해선 어서 빨리 삼켜내는 수밖에 없다. 결심하듯 일그러지는 얼굴근육과 함께 하는 수 없이 소스케가 꽁꽁 뭉쳐있는 다크초콜릿을 크게 크게 조각 내 깨물어 삼켰다. 쓰다. 달다. 너무 쓰다. 지독하게 달다. 한데 섞인 부드러운 크림과 넘치는 묽은 군침을 애써 꾸역꾸역 삼키면서 소스케는 또다시 울컥하는 짜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고작 손바닥만 한 상자 속 금세 녹아내려 없어지는 초콜릿 조각에 그가 명백한 질투를 느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모노님 :

[Free!/소스마코] Love Bang★!

2015. 1. 25. 22:42 from 프리

 

Love Bang!

 

 

 

 

 

이제껏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를 욕하거나, 싸워보겠단 생각도 해본 적 없다. 무르다면 무른 것이고 때때로 속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지만 그것이 마코토의 장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긴장되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분노를 간신히 가라앉히며 그래도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먼저 술자리를 권한 것이다. 으레 남자들이란 오가는 술 한잔 오해가 풀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주먹다짐까지 각오하고 있던터라 기다렸다는 듯 내뱉는 그의 제안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왜 어째서 찾아온 것인지 뻔히 알 텐데. 술을 마시고 싶다면 자신의 집에서 마시라는 야마자키 소스케의 뻔뻔한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결판을 지어야 했기에 마코토는 소스케의 집 안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래서 그 년이."
"나나쨩."
"그래 나나 그년이 너한테 쫒아가서 복수라도 해달라든?

마코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선이 굵은 눈썹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소스케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또다시 화가 치솟았지만 바로 맞은 편에 앉아있는 소스케의 멱살을 잡거나 할 수는 없었다. 홈그라운드의 위력일까, 그의 집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쩐지 손님이 되어버린 기분에 마코토는 평소의 습관대로 술병이 놓여진 테이블 앞에서 정좌까지 하고 말았다. 몇가지 안주거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나오던 소스케가 뭐 하는 거냐고 무릎 꿇고 있던 허벅지를 한번 꾹 밟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꽤나 다리가 저렸을 테다. 눈치가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두 볼을 붉히고 코끝까지 알딸딸해지는 취기이다. 사들고 온 맥주캔이 바닥나자 소스케는 찬장에 올려져 있던 양주와 구석에 있던 와인까지 꺼냈다. 본래 술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마코토는 이제 슬슬 한계였다. 반면에 한 손에 들린 양주잔을 태연하게 흔드는 소스케는 취한 기색 하나 없이 멀쩡하다. 이렇게 쉽게 물러설 수는 없다.

"어차피 별 볼일 없는 년이었어."
"나나쨩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마!"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사귄 여자친구였다. 병아리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여자친구.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고해왔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별에 마코토는 많이 힘들어했다. 일주일을 끙끙 앓고 겨우 기력을 차려 나간 캠퍼스에서 소스케의 품에 안겨 걷고 있는 나나쨩을 목격했다.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답게 잘생긴 외모는 본래부터 인기가 많았고 속설에 의하면 그와 한번 자보는게 캠퍼스 여대생들의 소원 중 하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돌 지경이었다. 너절한 풍문이지만 야마자키군은 자신이 봐도 멋있는 사람이니까. 아마도 저는 상대가 되지 못할 테지. 그저 나나쨩의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 이틀 뒤 잔뜩 부은 얼굴의 나나쨩이 펑펑 울음을 터트리며 마코토의 앞에 나타났다.

호구새끼. 마치 남 이야기하듯 마코토를 조롱한다. 너가 차인 것도, 나한테 따먹히고 버려진 것도 다 그년 책임이야. 왜 나한테 와서 난리인데? 뻔뻔하다. 뻔뻔해. 마코토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눅진하게 풀어진 얼굴근육이 제맘처럼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쿵쿵 빠르게 뛰는 심장을 따라 넘치는 타액에 젖은 입술에서 자꾸만 뜨거운 숨이 쏟아지고 비틀비틀 몸을 가누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나쨩은 속은 것 뿐이야. 그녀에게 사과해애...최대한 씩씩 인상을 쓰려 노력하는 모습에 소스케의 입가가 불길하게 미끄러진다.

"그럼 내기로 정하지."
"내기이...?"
"학창시절에 한번 쯤 해봤을 거 아냐. 서로 붙잡고 먼저 싸는 사람이 지는 거."

뭐를 붙잡고 뭐를 싸는 것인지 마코토는 곧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대뜸 마코토의 허리춤으로 뻗어오는 손길에 뒤늦게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지는 것이었다. 하루랑은 이런 것 해본 적 없다. 도리도리 고개짓을 하며 기겁을 하는 마코토에 소스케가 다시금 신경을 긁는다. 왜 자신 없어? 그러니까 그년이 널 호구취급하는 거다. 술에 취해선지 쉽게 흥분해버리고 만다. 자신 없긴 누가 자신 없다는 거야아! 울컥하는 기분에 삐쭉 매서운 시선으로 소스케를 노려보며 마코토가 대담하게 그의 바지버클을 움켜쥐었다. 야마자키군의 그것은 어느 정도일까. 분명 클 테다. 클 테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긴장한듯 큰숨까지 들이내쉬는 동안 소스케의 아래쪽이 불룩해진 것이 보였다. 마치 전의를 불태우듯 아직 버클을 내리지도 않았는데도 느껴지는 뜨거운 기세에 물기어린 눈동자가 흔들린다. 저건 크다. 그치만, 그치만! 위축되는 마음을 억지로 부추기며 마코토가 두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욕을, 욕을 해야 해.

"야마자키군 그러다 에이즈에 걸릴지도 몰라!"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그런 문란한 관계들은 그만 둬, 이겠지만 술에 취한 정신은 제가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를 터였다. 아랫춤에 닿은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우스웠지만 애무처럼 적당히 기분 좋은 자극이라 내버려두었건만. 이를 악무는 것과 동시에 단단하게 박힌 근육에 불끈 힘줄이 서더니 소스케가 금세 마코토의 위로 덮쳐들었다. 술병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넘어진 등이 바닥에 부딪히고 아파할 겨를도 없이 바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코앞까지 다가온 소스케의 얼굴에 마코토는 히끅 딸꾹질을 했다. 주루룩 새어나와 카펫을 적시는 양주의 독한 냄새에 코끝이 아찔해졌다.

"내가 에이즈에 걸리면 가장 먼저 네녀석 뒤에 박을 거야."

"그리고 듬뿍 싸줄 거다. 뱃속이 가득 찰 만큼 듬뿍."

귓가에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흠칫 소름이 돋는다. 한기마저 느끼며 마코토의 온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잘못 걸렸다. 머릿속의 경고등이 켜지기도 전에 소스케가 마코토의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내렸다. 어찌나 악력이 쎈지 속옷의 고무줄이 너덜거릴 정도이다. 야, 야마자키군?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더듬더듬 그를 불러보지만 마코토의 중심은 이미 소스케의 커다란 손아귀에 붙잡힌 뒤다. 자신은 화를 내러 온 건데...! 사색이 되는 마코토와 달리 장난치듯 동그란 귀두 끝을 손 안에 굴리며 소스케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내 좆 잘 붙잡아. 누가 먼저 싸는지 내기해보자고 타치바나.

 

 

 

 

 

 

 

Posted by 모노님 :

 

 

Central Park West

 

 

[소스마코 / 전연령 / A5 / 24p / 3,000원]

 

 

케이크 스퀘어 F04-a에 나오는 Free! 소스마코 소설입니다. 

원작으로부터 3년 후, 미국 센트럴 파크에서 재회한 소스케와 마코토의 이야기입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께선 샘플 아래 수량조사에 응답해주세요!

 

 

 

 

 

 

 

 

 

 

<<sample>>

 

 

 

 


눈이 내린다.


신년행사가 끝난 뒤에도 맨해튼의 야경은 변함없이 화려하였다. 심야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섬. 저물지 않는 인공태양처럼 마천루의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는 도시. 불 꺼진 방안에서도 비스듬히 머리를 기댄 창가가 눈부실 정도로.


그 가운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보다 가까워진 하늘 덕분일까. 고층의 호텔 룸을 예약한 보람이 생긴 것이다. 투명한 유리창 밖으로 얼음결정의 육각 진 모양까지 보이는 듯싶다. 수천 개의 결정은 한데 엉겨 붙어 눈송이가 되고 이윽고 함박눈이 되었다멀거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문득 세상이 희게 지워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빛 무리가 현란하던 길거리의 조명마저 눈발 속에 묻히고 새하얗게 덮이는 도시 위로 비치는 것은 시린 은세계뿐이다.


그날 밤에도 눈이 왔다. 목소리를 따라 올려다본 창 밖에서 눈이 내렸다. 두껍게 쌓인 희푸른 그림자가 머리맡에 드리워졌다. 소복소복 흐린 기억을 덮었다. 거니는 행인조차 없는 텅 빈 거리처럼 깨끗하게 지워졌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까만 밤에 재티를 닮은 눈송이만이 뿌옇게 흩날린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말고 잊어버려

그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 * *

 

 

 

그는 검은 겨울나무처럼 서 있었다.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이곳은 일본에서 위도를 따라 대양을 건너서 위치한 북반구의 아메리카이다. 110번 스트리트(110th street)를 지나서 5번 애비뉴(5th Avenue)와 센트럴 파크 웨스트(Central Park W.)까지. 뉴욕 센트럴 파크의 칠이 벗겨진 철제벤치에 그와 나란히 앉게 될 것이라곤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이 없다.


안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소스케는 이른 아침 가볍게 로드워킹에 나섰다. 햇살이 늦은 한겨울답게 인적이 드문 공원을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그는 줄곧 벤치에 앉아있었다. 약속이 있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길을 잃고 쉬어가는 관광객일지도 모른다.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반복되자 그는 정말로 공원에 설치되어있는 오브제들 중 하나처럼 보이기도 했다. 검은 겨울나무의 보호색을 입고서 희거나 어둡기 만한 명암뿐인 풍경 속에 홀로 덩그러니 남은.


땀을 뺄 생각까진 없었건만 어째선지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서서히 턱 끝에 숨이 차오르고 마침내 세 번째로 소스케가 벤치 앞을 지나칠 무렵이었다. 발밑에 으깨지는 얼룩진 눈 부스러기와 함께 거리를 좁혀 갈수록 대수롭지 않은 풍경들 속에서 검은 가로수의 형체가 도드라지는 것이다. 마치 불가피하게 이끌리는 자성처럼. 흘깃 미끄러진 시선이 벤치 아래 가죽으로 마감된 갈색구두로 향하는 순간,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선 마코토가 먼저 입술을 떼었다.


한잔에 2.50달러나 하는 노점 커피가 탐탁지 않았지만 트레이닝복 차림에 지갑을 갖고 나오지 않은 터라 커피는 전부 마코토가 사야했다. 불쑥 앞으로 내밀어진 테이크아웃 컵에 소스케는 그제야 여전히 이어폰을 빼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in't no sunshine when she's gone. And this house just ain't no home.

Anytime she goes away……
 

귓가에선 블루스 기타반주와 함께 빌 위더스의 70년대 팝송이 이제 막 끝나가고 있었다. 한손으로 거칠게 빼낸 이어폰 줄을 갈무리도 하지 않은 채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고 소스케는 마코토가 건네는 컵을 받아들었다간판에는 유명체인점과 같은 원두를 쓴다고 써 붙여놓았지만 혀끝에 느껴지는 역력한 탄 맛에 소스케는 온기가 어린 테이크아웃 컵을 계속 쥐고만 있었다. 그렇게 일행인 듯 아닌 듯 한사람 분만큼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선 싸구려 아메리카노가 다 식어가도록 서로 간에 오가는 대화가 없었다.


옆을 돌아보니 마코토 또한 다시 입가로 커피로 가져가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손등을 덮지 않도록 알맞게 제단 된 검은색 모직코트 아래로 마디가 긴 손가락이 가볍게 컵을 감싸 쥐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의 눈동자는 길 건너의 얼어붙은 호수로 향해있어서 옆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 단추만 남겨둔 채 단정하게 여민 코트 깃과 달리 머플러는 어깨 위로 한 바퀴만 넉넉하게 두르고 있었는데 그 탓에 슬쩍 드러나는 목덜미가 허전해 보인다. 소담하게 덮인 머리카락 아래로 발갛게 얼어있는 귓불. 소스케가 오기 전부터 얼마나 오래 이 자리에 앉아있었던 걸까. 촘촘하게 짜여 진 캐시미어와 무늬 없는 짙은 녹색의 머플러는 그와 잘 어울렸지만 오랜 시간 찬 공기를 쐬어 울긋불긋해진 살갗에는 찌푸린 시선이 향한다.


자신이 오길 기다린 것인지, 불러 세울 결심을 굳힐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못내 어색하게 소스케의 성을 부른 이후로 마코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타국에서의 조우라곤 해도 소스케와 마코토는 반갑게 해후를 나눌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전보다 키가 자랐나. 아니면 살짝 말랐나. 서글서글한 눈매와 순한 인상은 그대로인 것 같기도, 아니 조금 달라졌나. 그런 세세한 부분들은 알지 못해서 가늠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비탈길을 구를수록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시간 역시 그러하다. 불어나는 눈덩이와 같이 시간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고 지나간 3년의 흐름은 체감상의 속도가 더욱 빠르다. 우연조차 되지 못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등 돌렸을 인연일 수도 있었다. 그러기에 어색한 침묵과 함께 마코토는 먼 풍경을 바라보고 자신은 답지 않게 운을 띄울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소스케는 사메즈카에서 보냈던 몇 달 남짓의 고교시절에서 또렷한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나나세와 함께 온 건가?”


그와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접점 중 하나인 이름이다. 타치바나에 대해서 생각하려 하면 먼저 나나세가 떠올랐고 그 다음이 그였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가는 과거의 장면들 중에서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으니까. 익숙한 이름에 호수를 향해있던 마코토의 고개가 저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이 마주치는가 싶었으나 곧바로 누그러진 꼬리의 눈매를 바닥으로 떨구는 탓에 미세한 차이였던 눈높이가 더욱 멀어진다.


야마자키군은 내가 아직도 하루 뒤만 따라다닐 거라 생각하는구나.”


뽀얗게 새어나오는 입김이 아니었다면 놓치고 말았을 혼잣말처럼 그가 중얼거렸다. 갈색구두의 둥근 코가 괜스레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긁는 것이 보였다.


유감스럽지만 이번엔 나 혼자야.”


호흡을 고르며 짧은 숨을 한번 내쉬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코토가 말했다. 한 달 정도 혼자 여행 중이야. 어젯밤에는 브룩클린 브릿지를 봤고 오늘은 센트럴 파크를 둘러볼 참이었는데 여기서 야마자키군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몇 번인가 들어보았던 나지막한 음성이지만 어쩐지 소스케의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모래알이 낀 것처럼 입안이 텁텁해진 느낌이라 내내 들고 있던 컵을 입가로 기울였지만 얼마안가 후회하고 말았다.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는 혀에 더욱 써서 소스케의 미간이 괴팍하게 구긴 종잇장처럼 찌푸려졌다.


신년 축제를 보러 온줄 알았어.”

내가 뉴욕에 도착한 건 신년축제가 끝난 후였어. 야마자키군은?”

, 그렇지.”

린과 함께?”


이 대목에선 대답하기를 좀 더 망설였다. 같은 질문으로 자신을 골려주고 싶은 걸까. 기억 속의 마코토는 빈정거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조금 변한 것 같은 목소리를 내는 그라면 난처한 기색을 띤 소스케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관자놀이가 지끈해지려던 무렵, 윗주머니 안에서 지잉하고 진동이 울렸다. 평소라면 귀찮아했을 통화지만 때마침 구원투수와도 같은 타이밍에 진동음의 마디가 끊기기도 전에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허나 구원투수의 등장은 득점이 아닌 아웃카운트를 세는 레드라이트였나 보다. 액정화면이 번쩍이고 이어서 수신자를 확인한 소스케가 퍼뜩 마코토의 시선이 향해있는 방향을 쫒았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깜빡거리는 눈동자가 마주쳐온다.


미안, 엿보려던 것은 아닌데전화 받아.”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며 싱긋 한번 웃고는 그는 다시 얼어붙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소스케를 재촉하는 린의 음성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어이, 소스케. 신년축제 때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겨울 내내 집안에만 박혀있을 셈이냐? 이제 슬슬 몸을 움직여줘야지.

오늘아침부터 로드워킹 시작했다.”

-, 잘됐네. 점심은 맨해튼으로 먹으러 와. 나랑 하루는 여기 있으니까.”

나도 우연히 타치.”


이어받던 대화는 문득 그의 옷깃을 붙잡는 손길에 멈추고 말았다. 소스케의 옷자락 끝을 붙잡은 채 곤란한 표정의 마코토가 고개를 가로 젓고 있었다. 모른 척 뿌리칠 수도 없어 휴대폰을 들고 있던 자세 그대로 소스케가 소리를 죽이고 입모양만을 움직였다.


말하지 마?’


달싹이는 입술을 단번에 보고 알아보고 마코토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한 번도 아니고 연신 끄덕여지는 고개에 소스케가 한 손을 내저으며 수화기에 대고 태연한 목소리를 내었다. 다행히 화제가 바뀌어 몇 번의 대화를 더 주고받은 뒤 린의 성화에 하는 수 없이 맨해튼에서의 점심약속을 잡고서야 통화가 끊겼다.


열이 뜨근하게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마주친 마코토의 얼굴은 조금 낭패라는 기색이다. 흔들리는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베시시 웃는다.


실은 요양 차 온 거라 하루랑 린한테는 비밀이야.”

어디 안 좋은가 보지?”

겨울우울증이래.”


낯선 단어가 주는 한기에 성에가 피어나듯 뼛속 깊이 시려온다. 적막한 공기가 멋쩍은 듯 그가 덧붙였다. 우울증이라곤 해도 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수면시간이 불규칙하거나 조금 무기력한 정도야. 겨울엔 원래 다들 그렇잖아. 바깥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좀 쬐면 좋아진다고 했어. 잠깐 쉬면서 여행이라든지 떠나고 싶은 때이기도 했고. 걱정할까봐 일부러 말하지 않고 온 건데 마침 다들 뉴욕에 있었을 줄이야. 괜찮아, 정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무서운 얼굴하지 마, 야마자키군.


그만 일어나야겠네.”


살짝 흔든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곤 그가 벤치에서 일어섰다. 자신이 밟고 온 으깨진 눈을 밟으며 갈 테다. 마코토가 나나세와 린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과자상자를 뒤적이다 손끝에 걸린 비터 초콜릿처럼 특별하면서도 씁쓸한 감각.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니 뒤돌아 떠나버릴 것 같았던 그는 아직 가지 않고 주머니에 양 손을 넣은 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마치 검은 겨울나무와 같이.


상처 입어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

혹시 근처에 가볼만한 식당이 있어?”

“…맨해튼에 괜찮은 곳이 있긴 한데.”

맨해튼 말고 센트럴 파크에.”

아마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 걸로 기억해.”

그럼 내일 점심은 거기서 먹지 않을래?”


느닷없는 제안을 뒤로 마코토가 두르고 있던 짙은 녹색의 머플러를 풀러 소스케에게 건네었다. 떠밀기에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었지만 무슨 상황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트레이닝 져지 차림으로는 무모해. 아직 한겨울이야.”


미간을 찌푸리며 여전히 의구심이 가시지 않은 표정을 내려다보며 마코토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너스레를 떨었다.

말했잖아, 난 바람을 쐬어줘야 한다고.


나는 내일도 여기에 있을 거야. 그때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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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