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로켓토르] 룸메이트

2018. 8. 17. 02:56 from MCU

 

 

 

* 로켓X토르 대학생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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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태양'이라 할 수 있다. 저기 봐, 토르 오딘슨이야. 그 유명한?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좇듯 모든 고개가 그를 따라 움직인다. 그가 밝은색의 블론드여서만이 아니라 찡긋 날리는 윙크나 해사한 웃음을 지을 때 드러나는 새하얀 치열 등 모든 게 반짝거린다는 느낌이다. 그에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목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달'인가. 어느 정도 음습한 구석이 있음을 로켓은 인정했지만 그는 달이 뜨면 야수로 변하는 늑대인간은 아니었다. 비유는 집어치우고 아무튼 토르는 빛났다. 좀 지나친 게 문제지만. 

 

토르는 로켓의 대학교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공과대와 예대 건물이 서로 떨어져 있음에도 둘은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지난해 디자인과 놈팽이 새끼와 트러블이 있었기에ㅡ침대에서 싸구려 대마를 핀 흔적을 발견하고 룸메이트를 묵사발로 만들었다(로켓은 후각이 예민했다, 그의 침대에서 핀 것이 문제였다)ㅡ로켓은 살짝 언짢았다. 예술에는 딱히 조예가 없는 그였기에 어느 정도 편견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어떤 놈팽이 새끼가 기어들어 오나 싶어 팔짱을 끼고 입구를 노려보는데 북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토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 앞까지 따라와 짐 풀기를 도와주겠다, 우리 방에도 놀러와라 소란스럽던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야 토르는 뒤늦게 인사를 건넸다. 미안해, 시끄러웠지. 토르는 로켓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두어 번 부드럽게 주물렀다. 혹시 운동하나? 체육관에선 본 적 없는데. 첫 만남에 건네진 친밀감의 표현에 로켓은 내심 당황했다. 미식축구 관심 있어? 우리 팀에 들어와, 끝내줘. 그가 <리벤져스>라는 미식축구팀의 쿼터백이고 그의 신생팀이 리그 상위권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캠퍼스에 있는 학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십에 관심 없는 로켓 또한 토르에 대해선 어느 정도 주워들은 것이 있었다.

 

-<리벤져스>는 이번에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빌 워>대회에선 플레이 오프에도 없지 않았나.

-하하, 이번엔 기대해도 좋아.

 

한껏 비꼰 말에도 토르는 변죽 좋게 웃었다. 더 입부를 권하진 않았고 다만 아까운 어깨야, 아쉬운 척을 했다. 실은 지난 여름방학 가드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저절로 배겨진 근육이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래도 아예 눈치가 없어 뵈진 않아서 로켓은 어느 정도 그와 잘 지내볼 기분이 들었다. 운동하는 놈이 약을 빨진 않겠지...들고 온 박스를 풀고 짐을 꺼내 옷장부터 채워가던 중 토르가 문득 로켓을 돌아보았다.

 

-나도 너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데. 

-뭔데.

-별명이 <외로운 늑대>라며?

 

처음 들었을 때 로켓은 그것이 무슨 신종 악성 코드의 이름인 줄 알았다. 요즘엔 게임 아이디로도 안 쓸 유치한 별명. 공대에 괴팍한 천재가 있다고, 늘 혼자 다녀서 사랑을 모르는 외로운 늑대라던데. 그런데 작년에 룸메이트 코를 부러뜨렸다는 게 진짜야?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것이 더욱 가관이었다. 그의 새로운 룸메이트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보름달이 떴다 해서 로켓이 야수로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깊은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그에게도 은밀하다면 은밀한 비밀이 있었다. 그를 둘러싼 유치한 추측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일부 맞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최근에 그는 좀 외로운가 싶었고, 또 사랑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엄밀하게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늦은 밤, 그가 맥주를 마시며 낯선 남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장소가 번화가의 펍이 아니라 게이클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로켓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일 것이 뻔했다.

 

로켓은 게이였다. 그렇다고 아무 남자랑 자고 다니는 클럽 죽돌이나 마성의 게이까진 아니고. 그냥 이따금 클럽에 들러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 어쩌다 그럴 기분이 드는 남자와 하룻밤 욕구를 해소했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두뇌는 튈 때와 튀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했고 본의 아니게 금욕과 원나잇을 오가는 이중생활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작년 디자인과 룸메이트의 코를 부러뜨린 이유도 마약에 취한 새끼가 로켓의 침대 위에서 그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자위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클럽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헐떡였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룸메이트와 섹스라니 말도 안 되지.

 

클럽에선 되도록 술만 마시는 그였지만 오늘 밤에 만난 녀석은 꽤 적극적인 타입이었다. 허벅지에 올려진 손이 술기운을 핑계로 몇 번이나 다리 사이를 터치하며 노골적인 싸인을 보내왔다. 달래듯 키스를 해주어도 반쯤 맛 간 눈이 한 판 뜰 생각으로 형형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약에 취한 듯하다. 로켓은 쯧 혀를 찼다. 그는 마약에 절은 섹스를 혐오했다. 그래도 제법 취향인 녀석이었는데.

 

주위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이라도 바지 버클을 풀어내릴 기세인 녀석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일단 복도의 간이의자에 앉히고 관리인을 붙여준 후 돌아갈 생각이었다. 벗어날 핑곗거리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술과 약에 취한 녀석이 바로 의자 위에 쓰러졌다. 관리인과 함께 차가운 생수를 찾아 나선 그때였다. 

 

-취한 파트너를 버려두고 가는 건가?  

 

아니면 그쪽은 볼 일 다 봤다는 거? 그의 매너를 비난하는 신랄한 음성에 로켓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등을 돌리는 그의 인상이 어쩔 수 없이 짜증으로 가득했다. 신경 끄고 꺼지라 말할 셈이었다. 하지만 인사불성으로 너부러져 있는 녀석처럼, 아니 그보다 더 밝은색의 블론드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뒤늦게 낮은 목소리가 귀에 익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늘 자신만만하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지금쯤 그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인 치어리더와 드라이브를 하거나 밤새 불꽃놀이를 하는 수영장 파티에 가 있었어야 했다. 이런 늦은 시각, 어두운 뒷골목의 게이클럽이 아니라. 

 

-운동을 어디서 하나 했더니, 여기서 했나 보군.

 

고개를 돌아본 곳엔 인기스타 쿼터백, 빛나는 태양, 그의 룸메이트 토르 오딘슨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토록 어색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사건의 당일은 물론 이후로도 며칠 외박을 하거나 새벽녘이 돼서야 들어가는 등 마주치는 상황을 필사적으로 피해왔지만, 같은 기숙사의 룸메이트인 이상 언젠가는 마주칠 운명이었다. 각자의 침대에 걸터앉은 채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만난 장소나 뉘앙스를 보아 아웃팅의 위험은 없어 보이지만 그런데도 로켓은 뭔가 약점 잡힌 기분이었다. 그날만 해도 얼어붙은 로켓의 어깨를 처음 만난 그때처럼 주무르고 떠난 것은 토르였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입을 연 것은 토르이다.  

  

-금발이 취향이면 말하지 그랬나.

 

상황의 국면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로켓은 이때 느꼈다. 그들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어쩐지 묘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고개를 들어 흘겨본 토르는 태연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로켓은 문득 작년 자신의 침대에서 자위쇼를 펼쳤던 옛 룸메이트를 떠올렸다. 토르에게서 약 기운 같은 건 일절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그놈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걸까. 잠겨 드는 목을 한 번 가다듬은 로켓이 힘주어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난 룸메이트랑 섹스 안 해.

-왜지? 

-왜냐니...룸메이트잖아? 클럽에서 만난 파트너랑 다르다고.

-그러니까 그 룸메이트랑 자면 굳이 클럽에 가서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없잖아? 

 

고민할 가치가 없는 간단한 공식을 설명하듯 토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네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거기까지 듣고 나니 로켓도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각했던 저에 비해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이 장난처럼 대수롭지 않게 들려온다. 그만큼 분위기는 가벼워지고 로켓도 더이상 고민하는 자신이 점점 고집스럽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약간 될 대로 되라 싶은 자포자기의 심정도 든다. 금발만 아니었어도, 잘빠진 근육질만 아니었어도...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던 그의 이성이 마침내 푹하고 꺾이고 말았다. 내가 갈까? 아니면 네가 올래? 마주친 얼굴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Posted by 모노님 :